行星 S-4266



2011-04-06
http://gamm.kr/792 프랑켄슈타인

스크립트북을 먼저 읽을까, 공연을 한번 본 후에 읽을까 하고 미루고 있었는데, 어제 오롯이 책을 읽을 시간이 난 바람에 읽어버렸습니다. 프레스 프리뷰와 몇개의 인터뷰는 보았지만, 아직 프레스 리뷰와 다른 공연 보신 분들의 리뷰는 읽지 않았었는데요, 그럼에도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프레스 포토슛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스크립트북을 먼저 보았다면 조금 다른 감상이 나올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달까. 스크립트북을 맨 처음 읽고, 프레스 포토슛을 접하고, 공연을 접하면 좀더 단계적인 감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포토슛을 먼저 본 것은 딱히 나쁘진 않았습니다. 덕분에 스크립트북 읽는 내내 실제 배우들 모습으로 상상되어버린 바람에(ㅎ) 물론 스크립트북과 실제 최종 무대에서의 라인과 디테일, 혹은 주요 장면까지도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고 있진 않습니다.

 

되려 좀 반겼던 면도 있어요. 스크립트북을 읽으면서 대니보일 감독님이 말씀하신 "더블 캐스팅"에 대해서 완전히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었으니까요. 원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에서 보여지던 각색에 대한 썩 좋지 않은 평에 대해서는 뭐라 왈가왈부 할 순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딱히 원작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나름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연극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인 진행이라던가, 주요 캐릭터 간의 관계에 대한 대사들 자체는 나쁘다곤 생각되지 않네요.

 

다른 리뷰 등을 참조하진 않았기 때문에, 실제 공연을 본 이후에는 (배우분들의 연기가 추가되는데다 어떤 변형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기록용으로 스크립트북만 읽은 상태에서 포스트를 남겨봅니다. (-랄까, 논리적인 글쓰기 강의 따위 좀 배워야할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지긔(...))

 


 

크리쳐 vs. 빅터

 

원작은 읽지 않았지만, 몇몇 인터뷰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원작은 전적으로 빅터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 같은데, 그에 반해 이번 각색은 도입을 비롯해 상당 부분 크리쳐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중반을 지나서 크리쳐가 빅터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빅터는 맨 첫 장면 이외에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후반의 중반까지는 빅터에 대한 할당량이 좀 부족한 듯 해보였지만- 실은 끝까지 가게 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만. (이 부분은 맨 마지막에 다시)

 

빅터는 맨 첫 장면에서 크리쳐를 아예 부정하고 그냥 버립니다. 크리쳐를 죽이지 못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빅터가 아예 크리쳐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크리쳐의 입장에서 빅터는 창조자인 부모, 그로서 이루어지는 가족이기도 하고, 자신이 버림 받은 이후에 만났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자신을 해하려 드는, 자신과는 다른 타인이기도 하죠.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때의 막연한 동경에서부터, 그가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의 경외, 곁에서 지켜보면서 깨닫게 되었을 동질감으로 비롯되는 애정에 더불어, 그가 자신을 만들었지만 버렸다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이후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받은 냉대와 멸시, 폭력의 원론적인 분노는 더불어 실제로 이후에 빅터가 자신에게 저지르는 일로 이어지게 됩니다. 크리쳐의 시점에서 이렇게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인 빅터의 위치라는 것은 극전반에 나타나고 있어요. 반면에 극 중반부터 등장하는 빅터의 시점에서의 크리쳐의 위치도 이와 유사하게 상반되는 감정들이 뒤엉키는 모양새이긴 한데, 사실 조금 약한 감이 있기도 하달까. 아무래도 극 전반에 오로지 전적으로 크리쳐의 시점에서만 진행한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 부분은 원작을 읽게 되면 보충이 되는 그런 구조일까나(ㅎ) (아니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지만(ㅎ))

 

원죄 Original Sin

 

De Lacey

When we leave the womb we are pure. A babe in arms is untainted by sin. Evil is the product of social forces. And God has nothing to do with how a man turns out, be it good or be it bad.

인간은 태어난 직후에는 "선(善)" 그 자체이지. 요람 안의 아기들은 죄악에 물들어있지 않단다. "악(惡)"이란 것은 사회적인 영향을 받아 생겨난 산물일 뿐이야. 신(God)은 인간이 어떻게 변하든,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전혀 관계하지 않으시지.

 

크리쳐에게 말과 글, 지식을 가르쳐준 장님 노인 드레이시의 대사. 크리쳐에게 말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쓰인 단어는 "Paradise"였고, 이후에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 크리쳐에게 "원죄"를 설명해주는 장면에서 위의 대사를 하죠. 그냥 대사 그대로 빅터와 크리쳐의 관계를 그대로 나타낸 부분. 물론 대개 이 설명이 말해질 때 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것조차 신의 뜻이며 한걸음 물러선 상태에서 지켜보는 정도의 의미이지만, 실제로 빅터의 경우에는 그 자신이 되려 공포에 질려 외면해버린 쪽이지만요.

 

실낙원 - 실패한 신 Paradise Lost - God that failed

 

Creature

'Is this the region, this the soil, the clime,

Said then the lost Archangel, this the seat

That we must change for Heaven, this mournful gloom

For that celestial light?'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모든 희망을 잃은 대천사가 말했다.

이곳이 바로 그 곳, 그 흙과 그 공기인가.

이곳이 바로 천국과 맞바꾼 그 자리인가.

하늘의 빛과 맞바꾼 걷을 수 없는 애처로운 어둠이란 말인가.

 

Victor That's Paradise Lost! You've read Paradise Lost?

Creature I liked it.

Victor Why? You saw yourself as Adam?

 

Creature

I should be Adam. God was proud of Adam. But Satan's the one I sympathise with. For I was cast out, like Satan, though I did no wrong. And when I see others content, I feel the bile rise in my throat, and it tastes like Satan's bile.

난 아담이다. 신은 아담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사탄의 기분 뿐이었다. 내가 아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모두 날 몰아내려고 했어. 마치 내가 사탄이라도 되는 듯이.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난 분노에 휩싸였어. 그건 사탄이 가진 분노와 같은 거였어.

 

뭐 밀턴의 실낙원 따위 읽어본 적 없다만(ㄲ) (젠장 뭐야 난 연극 한개 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렇게 알아야 할 것이 많은거야(...)) 위의 인용 대사는 NT Live 트레일러에서도 그대로 사용된 부분. 극중에선 크리쳐가 빅터를 찾아가 피메일 크리쳐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던 장면에서 나옵니다. 크리쳐가 인용한 부분은 (정확하진 않지만) 아담이 쫓겨난 이후의 세상을 묘사한 부분인 것 같아요.

 

드레이시가 말한 원죄의 설명에서 묘사되는 신의 의도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면이 있긴 하지만, 빅터가 신(God)으로, 크리쳐가 아담(Adam)으로 대표되는 이 구절에서는 "실패한 신(God that failed)"이라는 면이 부각된달까. 흥미로운 것은, 극에서 빅터와 크리쳐와의 관계가 그대로 빅터의 아버지와 빅터 사이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었어요. 빅터는 프랑켄슈타인 가문에서 기대를 한몸에 받던 장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실험을 해대더니 동생 윌리엄과 정혼자 엘리자베스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는 엘리자베스를 되살려낼 수 있다며 이상행동을 보이게 되죠. 그리고 정말로 흥미롭게도, 극 후반으로 치달아 가는 그 부분에서 빅터 아버지의 대사로 "What have I brought into the world? I failed."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완전히 빅터와 빅터의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동일시되는 부분.

 

엘리자베스와 빅터의 대화 중에도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빅터와 크리쳐의 관계가 창조자(God)와 그 창조물(Creature)인 것에서 부모(Father)와 그 아들(Son)의 관계로 이어지는 거죠. (그리고 이런 관계에서 도출되는 책임감이라던가 윤리라던가 뭐라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 주절대고 싶지만 뻔하니까 생략한다. -라기 보담은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의 부재로 생략한다(ㄲ))

 

아름다운 아내 - 피메일 크리쳐 A beautiful wife - Female Creature

 

Creature

I'll clothe her in lace and velvet. I'll give her silks and pearls. I will walk in the garden with my fair angelic Eve! I will be Adam, she will be Eve! And all the memory of hell will melt like snow.

 

극 진행 중에 상징적인 "여성"이 상당히 등장합니다. 극 도입에서 크리쳐가 얼결에 구해주게 된 그레텔이라던가, 드레이시 노인의 며느리인 아가사, 그리고 빅터의 약혼녀인 엘리자베스까지. 그중 엘리자베스를 제외하곤 크리쳐에게 적대심을 표현하긴 했지만, 크리쳐에게 있어 이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성의 이브(Eve), 사랑을 나눌 대상이며 아름다운 아내(A beautiful wife)로 그려지죠. 물론 그레텔의 경우에는 크리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바로 도망가버리긴 하지만, 매춘부인 점에서 빠지면 안되는 여성 캐릭터에요.

 

정신적인 면에서의 사랑과 반려로서의 피메일 크리쳐인 점도 있지만,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순수한 상태에서 사회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생성되는 악이라는 개념에 더불어, 본능적인 욕구와 열정을 나타내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 자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루고 있달까. 크리쳐가 맨처음 만나게 된 여성 캐릭터가 매춘부라는 점은 본능적인 욕구를 상징하는 것일테고, 이후 드레이시 노인에게서 이것저것 배우면서는 단순한 본능 뿐이던 것에서 정신적인 면까지도 아우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게 되죠.

 

Victor

What do you know of the power of love? It is irrational, a pool of unreason! It is anarchic, volatile, vertiginous, mad! Above all it is uncontrollable! Millions of you on the earth? Coupling, procreating? No! You are the only one of your species - and that is how you will stay!

 

반면에 빅터는 "사랑"에 대해서 크리쳐와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죠. 사실 이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쪽입니다. 공교롭게도 인간인 빅터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반면에, 그가 만들어낸 실패작인 크리쳐는 정확하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요.

 

물론 이해를 못한다는 것도 있고, 두려움 때문에라도 빅터는 크리쳐가 요구한 피메일 크리쳐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거지만요. 빅터의 저 대사는 이쯤에선 되려 크리쳐가 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그런 면모를 나타내는 대사이기도 한 것 같아요.

 

Creature

At first I knew nothing at all. But I studied the ways of men, and slowly I learnt: how to ruin, how to hate, how to debase, how to humiliate. At the feet of my master, I learnt the highest of human skills, the skill no other creature owns: I finally learnt how to lie.

 

Tonight I have met someone - perfect. Thank you for trying to understand. But he broke his promise, so I break mine. I am truly sorry, Elizabeth.

 

기대되는 장면 중의 하나. 와- 크리쳐가 엘리자베스를 대면한 이 장면에서는 아무래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중이기도 해서 완전 몰입한 나머지, "I am truly sorry, Elizabeth." 라인을 읽을 때는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 진짜 글로만 읽어도 이런데, 씨발 벤이 저 장면 연기하는 거 보면 저는 어쩜이모티콘 우황청심환이라도 사가지고 가야할 기세이모티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진정 좀 하고(...)

 

피메일 크리쳐-라는 것은 크리쳐에게 있어 단순히 외로움을 없애줄 타인이라기 보다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종족, 그러면서 본능적인 욕정과 정신적인 사랑을 모두 충족시켜줄 반려로서의 의미를 가지는데, 자신의 눈앞에서 빅터가 피메일 크리쳐를 "죽인" 것에 대해 똑같이 되갚아주는 것을 택합니다. (여기서 크리쳐는 단순히 엘리자베스를 죽이려드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범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참 흥미로운 부분. 결국 본능적인 욕정으로 귀결되고 있으니까요.) "복수"라는 개념은 드레이시 노인의 아들과 딸이 자신을 몰아낸 것에 대응해 집에 불을 질렀던 것에서 이미 나타났었고, 엘리자베스 씬에서는 크리쳐의 대사대로 최종 단계의 스킬인 "거짓"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지요. 크리쳐의 이런 단계적인 표현은 꽤 괜찮은 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아무래도 빅터 위주의 서술이라고 하니)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Creature All I wanted was your love. I would have loved  you with all my heart. My poor creator. Master! You do love me! You do!

Vicror I don't know what love is.

Creature I will teach you!

Victor Yes. You understand it better than I. Do you have a soul, and I none?

 

Victor You give me purpose. You, I desire. Go on. Walk on. You must be destroyed!

Creature Come, scientist! Destroy me! Destory your creation! Come!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쳐와 빅터의 대화.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북극으로 간 크리쳐와 빅터. 빅터는 크리쳐를 "없애기" 위해 북극까지 그를 뒤쫓아 갑니다. 도입에서 막 깨어난 크리쳐를 처음 본 빅터가 놀라고 공포에 질려 크리쳐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과 종국엔 크리쳐를 "없애기" 위해서 끝까지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면서는 "도플갱어"를 떠올렸달까. 반대의 성(性), 이브(Eve)로서의 피메일 크리쳐가 있긴 하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크리쳐와 빅터는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 육체적인 반려에 대해 정신적인 반려의 관계로도 보여지니까요. 서로 보완해주고 동기가 되는 존재랄까.

 

크리쳐 and 빅터

 

뻔한 얘기를 정리도 못하고 딱히 길지도 않은 주제에 상당히 난잡하게 쓰긴 했지만, 사실 결론은 이것. 스크립트를 읽으면서 초중반에는 연극 특성이라 그런지 좀 나름 구성상 아쉬운 부분들이 많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더블 캐스팅"의 의도 자체를 완전히 동감하면서부터는 완전히 평이 달라졌달까. 일전에 별도로 포스팅했었던 가디언지타임지에서의 대니 보일 감독님의 인터뷰 대목이 완전히 이해가 가버린달까. "They create each other."라는 문장의 의미를 나는 사실 단순히 "창조"라는 의미를 좀더 중점에 두고 생각했었지만, 그 창조라는 행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뒤를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순환"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달까. 실은 결국 극중에서 온통 이루어지던 각층에서의 대입과 동일시가 빅터와 크리쳐, 이 둘 자체에도 온전히 적용되는 것이니까요. 뭐랄까, 말하자면-

 

분명 감독님, 영화로 찍었다면, 1인 2역으로 캐스팅했을지도.

 

-이랄까. 그런 의미의 "더블 캐스팅". 누가 크리쳐를 연기하고, 누가 빅터를 연기하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극 무대" 위에서 "동일시" 자체를 상징하는 도구로 쓰였다는 것. 서로 다른 날 공연에 서로 상대역으로 바뀌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 한 배우가 두 역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도구로 쓰였다는 것. 그런 의미의 "더블 캐스팅"이라는 말이죠.

 

사실 후반부의 중반(그러니까 빅터가 제대로 등장한 부분에서의 중반)쯤부터는 서로 다른 배우나 캐릭터로 놓고 읽어내려간 것이 아니라, 같은 배우, 같은 캐릭터로 놓고 읽어내려갔더랬지요. (물론 비주얼라이징은 빅터벤과 크리쳐벤이었겠지(ㄲ)) 아마 포토슛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스크립트를 먼저 읽었다면 이 생각이 약간은 옅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완전한 동일시보다는 개념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만 말았을 것 같아요. 이 동일시라는 점이 그냥 뻔하게 보이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캐스팅을 바꾼 공연분을 세트로 본 경우에 좀더 잘 와닿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정말이지 감독님, 판매 상술 아니라고 웃으면서 얘기 하셨겠다- 지금 벤과 조니 둘 중에 누가 더 크리쳐에 어울리고 누가 더 빅터에 어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이건 그냥 두번 다 볼 수 밖에 없는 공연인 거잖아이모티콘

 

원작에서는 빅터가 결국 자살한다는 것 같습니다만, 일단 읽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고. 원작의 감성도 이렇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리뷰 내용을 제대로 읽은 건 아니지만, 몇몇 외국분들 리뷰에서 벤과 조니의 연기는 훌륭한데 각본은 기대 이하였다는 말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좀 걱정했는데, 글쎄요. 역시 원작을 읽지 않은 자의 여유일까나, 나로서는 꽤 괜찮은 각색이지 말입니다. (물론 연극이라는 매체 특성상 좀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건 좀 논외로 치고.) 포스트 첫머리에서도 썼다시피, 캐릭터 배치라던가 대화의 진행 같은 건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원작을 사실 별로 읽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나로서는 "프랑켄슈타인"에 딱히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니보일" 감독님의 연극-이라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 정도에서의 각본이 마음에 드는 거라면, 뭐, 딱히 원작 찾아볼 필요는 적지 않겠나-하는 기분이랄까나(ㅎ)

 


 

배우들의 연기를 실제로 보게 되면 감상이 얼마나 달라질런지는 아직은 알 수가 없지만요. 그래도 벤과 조니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평이 대부분이니 잔---뜩 기대하고 보도록 하겠습니다이모티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