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星 S-4266



2007-06-19
http://gamm.kr/79 선샤인

팬픽션 소재로 쓰려고 꿍쳐둔 것입니다-만, 좀 글로 만들어내기가 귀찮아서, 슥슥 포스팅.

핀베커씨의 테러로 이카루스 1호와의 도킹이 실패한 이후, 핀베커씨의 습격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5명으로 계산했을 때 16시간 이후에는 모두 산소 부족으로 죽을 거였던 때이죠. 5명분에 16시간이니까, 4명이라면 22시간 정도 살 수 있는 정도겠군요. 핵탄두 분리 지점까지는 19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트레이씨도 죽고, 캐시양은 완전히 상심해서 벙커에 틀어박혀 있었던 때였죠. 코리 언니는 산소 정원을 살펴보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뷰뤼풀베이비를 발견하셨었죠!) 메이스씨는 정확히 뭘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고. 메인프레임을 점검한다거나, 뭐 평소에 시간이 남을 때 하던 일을 하고 있었을 듯 합니다. 이제 끝이라는 것에 상심할 위인도 아닐 것 같구요(ㅋ) 캐시양을 빼면 그래도 비교적 담담하게 분리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던 중이네요. 아, 캐시양이 담담하지 않다- 라던가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좀 슬퍼하고 있다는 것 뿐.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저 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캐파씨입니다. 캐파씨는 그때 역시 핵탄두실에 틀어박혀선 뭔가 잔뜩 계산해대고 있었지요. 희박해진 산소에 숨을 몰아쉬면서 어쩐지 엄청 집중해서 뭔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캐파씨가 뭔가 시나리오를 바꿀만한 중대한 계산을 해낸다던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캐파씨도 말했다시피, 이건 추측(guess)일 뿐이니까요. 태양에 점점 더 다가가면서 보다 더 현실적인 자료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보정해서 성공 확률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분리 지점까지 19시간 남은 상황에서라- 뭐, 별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 것은 아닙니다. 이카루스 시스템엔 태양 관측 시스템도 있을 거고, 시나리오의 변수를 조정해줄만한 관측 결과를 잔뜩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분리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잔뜩 테스트할 거리가 남아있는 거죠. 응,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어째서 캐파씨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중에 이카루스에게 산소 소비량을 체크해봐달라고 부탁했을까요? 숨 쉬기가 불편해서 신경이 쓰이니까 그럴 수도 있죠. 코리 언니가 4명이라면 충분하다- 라고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캐파씨도 알고는 있을 겁니다. 자신들이 한명도 살아남지 못해도, 이카루스 혼자 정해진 분리 지점에까지 도달해서 자동으로 핵탄두를 투하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요. 그때를 대비해서 자신이 최종으로 입력할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뭐, 하지만 캐파씨는 이것 역시 알고 있을 겁니다. 코리 언니가 4명에게는 충분하다-라고 말했다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요. 단순히 알고 싶어진 것 외에는 캐파씨가 별로 물어볼만한 것 같진 않은데- 나만 그런가요? 괜히 생뚱맞게 물어봤다가 핀베커씨의 존재만 알아채는, 의도된 대사로밖에 안보이는 건? (ㅋ)

그치만 좀 다르게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 16시간, 뭐 4명이라고 해도, 22시간 후면 죽을 운명이고, 19시간 후에는 핵탄두를 분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핵탄두실에 틀어박혀서 뭔가 엄청나게 집중하면서 계산해대고 있고, 게다가 다른 크루의 몸 상태를 신경쓰고 있어요. 산소 소비량을 알려달라고 하고 있단 말입니다. 뭐, 좀 연관지을 수 없나요? (아니, 혹시 다들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가? (ㅋ))

캐파씨, 혹시 살아 돌아가겠다는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기분이 문득 들었었어요.

분명 이카루스 1호와의 도킹이 강제로 해제되면서는 당장 방법이 없어 버려두고 떠나오긴 했지만, 이카루스 1호의 산소라면 충분히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겠죠. 이카루스 1호가 날지 못한다고 해도, 만약 도킹이 그렇게 강제로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핵탄두는 가져갈 수 없어도 산소는 가져갈 수 있었을 겁니다. 무슨 방법을 쓰던지 말이죠. (메이스씨가 좋은 아이디어를 또 내주지 않았을까? (ㅋ)) 그러면 행성 폭탄 이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4명분의 산소를 생산해낼 환경을 갖출 수 있을 정도의 시간만 벌면 되는 겁니다. 코리 언니라면 할 수 있었을 거에요. 이카루스 1호에서 식물들을 옮겨오고 시간을 벌만큼의 산소만 옮겨올 수 있다면, 코리 언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거에요. 산소 정원과 통신 타워만 파괴되었지, 그 외의 선체 손상은 전혀 없으니까요.

캐파씨는 어쩌면 그걸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건 일단 둘째치고, 핵탄두를 분리하고 이카루스 1호가 있던 곳까지 되돌아 올 수 있다면? 그럴만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4명이 소비하는 산소량과 현재 남은 산소량, 예상 핵탄두 분리 지점에까지의 소요 시간을 따져서 최소한 이카루스 1호가 있던 곳까지만 되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핵탄두 분리 시나리오를 조정할 수 있다면? 핵탄두 분리 시각을 조금 더 당겨서, 핵탄두가 무사히 태양 안에서 폭발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재계산해낼 수 있다면? 거대한 태양의 중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핵탄두 분리 후의 귀환 속도를 일시적으로라도 조금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면? 그러면, 어쩌면, 어쩌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되살려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어쩌면, 남은 사람들을 지구로 되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캐파씨는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온통 노트를 늘어놓고 뭔가 열심히 계산해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조금의,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코리에게 확인을 해야지. 캐시에게 확인을 하는거야. 메이스에게 확인을 해야지.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핵탄두 분리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자신 외에는 검토해볼 수 없는 문제니까-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능성을 계산해보는거다. 동전 던지기- 라고 해도 좋아. 할 수 있는 한의, 최대한으로 해보는 거야. -랄까. 직접 소리내어 말하진 않지만, 이 모든 사태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지구로 돌아가면, 그러면 메이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 소용없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말을 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거에요.

지구 궤도에서 훈련받을 때부터 곁에서 지켜보아서 알고 있지만, 크루 중에서는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인 트레이를 죽이겠다고 결정한 메이스의 표정이 떠오르겠죠. 트레이를 죽여버리라고 말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떠오르겠죠.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반대했던 캐시의 눈물도 떠오르겠죠. 그리고 자신의 피 속에 죽어 있던 트레이의 모습도 떠오르겠죠. 이 모두의 죽음은 전부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하던 메이스의 목소리가 떠오르겠죠. 어쩌면, 어쩌면 핵탄두를 분리하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진 않을까. 이카루스 1호에까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러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코리나 메이스가 방법을 찾아줄 거라고 믿겠죠. 캐시라면 자신의 이론을 이루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내 손으로 직접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렇지만 다들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낼 순 있지 않을까.

뭐, 객관적으로도 이카루스 1호가 있던 곳까지만 되돌아가서 여분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만 벌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긴 해요. 이카루스 1호의 에어락이 망가져서 도킹은 할 수 없고, 이카루스 1호의 산소도 새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카루스 2호에는 산소 고갈이라는 데드라인이 있는 거니까요. 그 안이라면 충분히 이카루스 1호의 산소를 끌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식물도 마찬가지고. 가져올 수 있다면 코리 언니가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귀환에 필요한 충분한 산소를 축적하진 못한다고 해도 원래 산소 정원의 일부만이라도 복구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게다가 남은 크루는 4명 뿐이고. 물론 좀 걸리는 시간이 길긴 해서- 가능성 찾기가 엄청 힘들 것 같긴 하지만(...) (핀베커 무시하고, 정말 4명만 남았다고 해도, 예정 분리 지점까지 도달한 이후에 남는 시간은 딸랑 3시간인데, 이카루스 1호까지는 대략 20시간 이상이 걸리죠. 캐파씨가 물어보았을 때 19시간이니까, 그전에 이카루스 시스템 체크하던 시간까지 하면 20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거에요.)

여기까지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이카루스 1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왕복할 수 있을만큼의 산소만 일단 확보하고 핵탄두를 분리하고 여유있게 돌아오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카루스 1호의 에어락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건 좀 불가능할 듯. 이카루스 2호로 끌어쓸 수 있는 산소도 일단은 산소 탱크에 있는 분량이겠지요. 이카루스 1의 에어락 내부 도어를 한번 열어버리면 그 순간만으로도 선체 내부의 산소는 모두 빠져나가버릴테고. 식물들도 그 상태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거에요. 이카루스 2호는 여유있게 태양까지 갔다 온다고 해도, 이카루스 1호가 버틸 수가 없겠죠.

영화 최종판의 상황으로만 생각한 거고, 사실 시나리오 초판은 좀 상황이 다릅니다(ㅋ) 시나리오 초판의 상황으로는 저런 가정이 좀 힘들구요. 캐파씨는 뭔가 막 계산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단순히 핵탄두실 콘솔 모니터에 막 흘러가던 데이터 스트림을 모니터링 하던 중이었구요. 게다가 캐파씨가 산소 소비량을 체크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생체 유지 위험 수위에 달하는 바람에 이카루스가 먼저 경고해주는 걸로 나옵니다. 핵탄두 분리 지점까지 영화 최종판에서는 19시간이 남았지만, 초판에는 그 시간 단위가 마이너스 10시간이에요(ㅋ) 단순 업무 불능까지 2시간, 복잡 업무 불능까지 4시간, 6시간 후 사망, 핵탄두 분리 지점까지 소요 시간은 9시간으로 나온답니다. 단순 업무 불능까지 단지 2시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목에 걸고 있는 통신기(아마도 생체 감지기 겸용인)의 불빛도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구요. (최종판이나 초판이나 이카루스의 'You are dying.' 대사부터는 시퀀스가 같아요.)

이런 점 때문에, 이 부분의 장면은 초판보다는 최종판의 변경된 부분이 더 마음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