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星 S-4266



2007-06-14
http://gamm.kr/77 선샤인, 크리스 에반스

난 사실 이 장면이 가장 마음이 아파요. 그런 기분 있죠, 막 울어버릴 수도 없고, 웃어 넘겨버릴 수도 없고, 뭔가 한없는 듯한 기분. 선샤인 영화 전체에서 난 이 장면에서 가장 그런 기분이 들어요. 맨 처음 볼 때부터 쭉- 볼 때마다 말이에요.

트레이씨를 죽이자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트레이씨는 이미 자살을 한 이후였지요. 메이스씨가 트레이씨를 죽이자고 먼저 내세웠고, 자신이 하겠다 자처하기도 했지만, 사실 트레이씨는 크루 중에서 메이스씨가 가장 친하게 여기는 친구입니다. 그를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정한 것도 못할 짓이지만, 그렇게 찾아갔는데 이미 자살을 한 그를 보았을 때, 메이스씨 기분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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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y..."

그리고 다른 죽은 멤버들이 생각나는 겁니다. 캡틴, 서릴, 하비. 그리고 그들이 죽게 된 최초의 이유가 생각나는 겁니다. 바로 이카루스 I호로 가보자는 결정이었죠. 물론 최종의 결정권자는 캡틴이긴 하지만, 메이스씨로서는 그런 결정을 하게끔 권고한 캐파씨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지요. 멤버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지구에서부터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 멤버였기도 하고. 그가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절대 겉으로만 드러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자신도 잘 압니다. 그래서 수트가 한벌 뿐인 이카루스 I호에서 귀환해야 했을 때 주저없이 그에게 수트를 입힌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종국에 와서, 이런 상황에까지 처했을 때, 결국엔 화가 나는 겁니다. 캡틴까지도 이카루스 I호와 조인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아무리 자신이 논리적인 설명을 해도 설득당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그의 말 한마디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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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physicist."

사실 메이스씨는, 조금은, 캐파씨에게 서운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그래서, 메이스씨는 화를 내고 맙니다. 아직은 모두가 살아있었을 때, 아직은 아무런 이상 징후도 없었을 때, 단지 지구로의 통신을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캐파씨에게 싸움을 걸어 팀의 분위기를 흐릴 뻔 했던 때, 사실 따지고보면 자신이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었지만 싸움을 먼저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캐파씨에게 되려 사과해야 했었을 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캡틴에게 약속했지만, 결국 메이스씨는 화를 내고 맙니다. 결국 해서는 안될말을 내뱉어버리고 말죠. "캡틴, 서릴, 하비, 트레이. 이 모두의 죽음은 모두 네 탓이다(This belongs you)."라구요. 트레이의 피를 캐파씨의 손에 묻히며, 캐파씨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이죠.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말을, 말을 하는 쪽과 듣는 쪽 모두에게 상처 입히는 그런 말을 해버리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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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elongs YOU."

난 그 말을 해버린 메이스씨와, 그렇게 자신의 손에 묻혀진 피를 바라보며 그 말을 들은 캐파씨의 눈빛이 너무 마음이 아픈 거에요.

궤도 수정으로 인한 사고를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심하게 자책하고 있는 트레이씨가 있는데, 캐파씨는 자신의 책임이라며 덩달아 같이 자책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결국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패널 수리를 완료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쳐버리신 캡틴의 죽음을 3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그 거대한 해일 같은 태양빛에 집어 삼켜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캐파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런데도 자신 이외에는 비상 시에 핵탄두를 수동 조작할만한 사람은 없다고 우선적으로 살려내야 하는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기분은 어떨까요. 아무도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그런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그런 기분은 어떨까요. 나의 책임이다, 나의 잘못이다, 사소한 싸움 하나에도 진심으로 사과할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은 어떨까요. 그리고 결국에 자신에게 돌아온, 손에 묻혀진 붉은 피와 마치 심장을 파고 들 것 같은 비난은, 어땠을까.

캐파씨가 메이스씨에게 먼저 싸움을 건 것은 그게 처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훈련 받을 때부터, 16개월 동안 그 좁은 우주선을 타고 비행해 오던 내내 누군가에게 그렇게 욕을 해댄 것도 처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할만한 상황이 있었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을 거에요. 그게 캐파씨의 위치이니까. 그는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위치에 있지 않죠. 자신이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아요. 계획을 하지만, 그 계획이 실패할 경우에는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계획을 세워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거죠. 사과는 모두 다른 사람의 몫이고, 책임을 지는 것도 모두 다른 사람의 몫인 거에요.

그런 자신은, 과연 줄곧 편하다고 느꼈을까. 난 사실만을 말하는 것 뿐이야- 라고 안이하게 생각했겠어요? 그런 위치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그 부담감에서 느껴지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커다란 짐. 꼭 그런 것만은 아닐텐데도, 마치 그 거대한 짐이 자신만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 도대체 이건 인간의 능력으로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일인데도, 태양을 살려낼 방법을 찾아내달라는 압박감. 신의 일을 원하는 주변인들. 난 캐파씨가 핵탄두실에 혼자 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떠올릴 때마다, 불안해요. 이 사람은 이런 걸 모두 생각하고 있을 텐데, 생각하지 않아도 항상 그렇게 느끼고 있을 텐데, 지구에서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이곳에까지 올 동안, 용케도 그는 자신을 유지하고 있구나- 라구요. 닥터 서릴과 캡틴은 그런 점을 아마도 알고 있었겠지요. 닥터 서릴이 항상 최우선적으로 주의깊게 보는 멤버도 캐파씨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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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elongs ME."

그런 자신의 손에, 트레이씨의 피가 묻혀졌을 때, -정말 난 이 장면에서 마음이 아픈 거에요. 순간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캐파씨의 눈빛이 정말 마음이 아픈 거에요. 메이스씨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수없이 귓가에 그런 말이 맴돌고 있었을텐데. 물론 그러니까 날 위로해줘- 라고 어리광 부릴 그런 입장도, 상황도 아니니까요. 난 어른이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결국 떠오르는 것은, 인류의 미래(Saving Mankind). 전혀 영웅적인 캐릭터도 아닌 주제에 걸핏하면 인류를 들먹거리는 것은, 전-혀 영웅적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고 자신의 곁을 지나가버리는 메이스씨를 붙잡아 싸움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서로가 서로에게만 싸움을 걸고 있는 건 아니에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 자신에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 죽어버릴 거라는 태양에게, 자신의 운명에, 그리고 신에게- 지쳐버린 거에요. 방관하고 싶어지는 거에요. 모르는 척 하고 싶고, 뒤돌아서고 싶은 거에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고 싶은 거에요. 힘에 부치고, 주저앉고 싶은 거에요. 난,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산소가 모자라서, 또 그렇게 풀릴 때까지 싸워댈 수도 없죠. 싸움이 일어났던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싸움은 결국 종료되고 맙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가슴이, 폐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버려서. 이제 남은 일이라곤 목적한 곳에까지 도달해 함께 태양으로 떨어지는 일 뿐. 이제는 더이상 사과도 할 수 없는, 더이상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더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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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바라보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난 모두가 후회를 했을 거라 생각해요. 이젠 더이상 그렇게 소리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들을 더이상 모른 체 할 순 없을 테니까. 캐파씨만의 책임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고,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는 한계도 이미 지나버렸다는 것도 알고 있을테니까. 서로를 마주 안아 위로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거에요. 상처 입을 대로 입어서 혼자선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되었는데, 더이상 서로를 부축해 일어설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핀베커씨의 등장으로, 조금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핀베커씨 등장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그런 상태로, 서로에게, 자신에게, 상처 입힌 그대로, 분리 지점에 도달해, 핵탄두를 분리하고, 같이 그렇게 태양으로 떨어지거나, 혹은 이카루스 I호처럼 영원히 태양 궤도를 돌며 그 빛을 바라볼 재가 되어 버렸겠지요. 그렇게 되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