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星 S-4266



2011-02-22
http://gamm.kr/759 대니 보일, 베네딕트 컴버배치, 프랑켄슈타인

미리 밝히지만, 난 아직 프랑켄슈타인 프리뷰 리뷰는 전혀 읽지 않았습니다. 이 포스트는 원래 설연휴 직후에 쓰려고 했던 것인데, 며칠 못쓰고 그냥 보냈더니 그대로 잊혀져버려서(...) 딱히 써야할 필요성은 없으니까 넘어가려고 했습니다만(...) (오늘 프랑켄슈타인의 스크립트북이 도착한 바람에 좀 스크립트북을 읽기 전에 이 포스트를 써둬야 할 것 같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몰래 덧붙여둠(...))

 

작년에 프랑켄슈타인 연극 발표가 났을 때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야"라는 걸 처음 알고 진-짜 컬쳐 쇼크를 받았겠죠! 이모티콘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내게 있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것은 TV에서 잠깐씩 등장하는 1931년판 프랑켄슈타인 영화의 아주 적은 수의 장면들 뿐- 아니, 장면도 아니고 그냥 괴물 생김새(...) 생각해보니 난 프랑켄슈타인 원작은 커녕 "그" 영화조차도 처음부터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이럴수가! 이게 성급한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인가- (아냐)

 

뭐, 그래도 별로 원작을 찾아본다거나 관련된 걸 검색해본 적은 없는데, 2월 4일, 연극 프랑켄슈타인의 첫 프리뷰 전날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기사 때문에 꽤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난 1월 타임지에 실렸던 대니 보일 감독님의 인터뷰도 라이브저널을 통해 공개되었고(기사가 실린 당일에 타임지 온라인에 갔더니 타임지는 유료더군요(...)), 그외에 각본을 맡으신 닉 디어님의 인터뷰 기사도 읽고 하면서 "역시 감독님"이라고 다시한번 되뇌였달까. 그리고 더 보러 가고 싶어졌다는 것은 논외로 칩시다 젠장이모티콘

 

프랑켄슈타인 연극은 대니보일 감독님이 영화계로 오기 전, 아직 영국 연극계에 있었을 때 구상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15년 전, 현재 각본을 맡으신 닉 디어님과 함께 말입니다. (당시 두분은 연극 "The Last Days of Don Juan"을 같이 하고 계셨답니다.) 그때 성사가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ㄲ) 성사되었었다면 베네딕트씨의 프랑켄슈타인과 크리쳐는 절대 볼 수 없었을 것 아닙니까! 정말 어쩜 우리 감독님, 베네딕트씨가 "After the Dance" 연극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셜록으로 유명세를 끼얹임 당한 작년 초에 딱 프로젝트를 시작하시다니. 정말 멋진 타이밍. 인생은 이런 것. 세상은 아름답지! 이모티콘

 

그때와 지금이나 두분의 기본적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1931년의 영화판 및 그외 다른 프랑켄슈타인 관련 작품들이 잘못했다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대니보일 감독님과 닉 디어님은 원작 프랑켄슈타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에 좀더 중점을 맞추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죠. 흔히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쳐-라고 하면 지능도 떨어지고 선악의 구분이 없는, 무섭고 흉포한 "괴물"을 떠올리게 마련인데(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니겠지만(ㅎ)) 연극 프로그램 내에 적혀 있던 글귀에서 이런 두분의 생각이 그대로 전해진달까요.

 

인라인이미지

 


 

아래부터는 기사의 일부를 인용, 보관해둡니다.

 

<더 타임즈> 대니 보일. 크리쳐의 관점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Starting from the Creature’s point of view was the key to unlocking the adaptation. The key to then getting the production up and running was to rebalance the story. Once you don’t start with Victor Frankenstein, it’s fantastically refreshing because it means that you have to rethink everything. Once you get going you need to balance the Creature with his obsession with his creator.

이번 각색의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크리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이었죠. 그리고 기획이 진행되면서는 전체 이야기의 밸런스를 새로 맞추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거에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크리쳐가 창조자에게 보여주는 그 집착에 대해서부터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는 거에요.


So we rebalanced our approach by coming up with the idea of double casting the actors. If you are going to do that, Victor ultimately has to be an equal. So the first half of the play, the first 20 or 30 minutes, is very much from the Creature’s point of view. And then it shifts to being this great debate between the two of them.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배우를 더블 캐스팅 하는 거였죠. 크리쳐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만큼, 빅터 역시 그만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해요. 실제 극의 전반부, 그 중 첫 2-30분 동안은 거의 전적으로 크리쳐의 관점에서 진행되요. 그런 후에 둘 사이의 이 거대한 논쟁으로 옮겨가게 되죠.

 

더 타임즈(The Times) 1월 기사. 타임지 사이트는 비공개이므로 링크는 라이브저널쪽으로 대신합니다. 사실 리뷰라던지, 스크립트북이나 원작이라던지, 보질 않아서 마지막 문장의 "great debate"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때까지 읽은 기사들이나 분위기로만 봐도 이 연극은 절대 호러일리도 없고, 빅터와 크리쳐의 말싸움(이랄까(ㅎ))이 꽤 주가 될 것 같으므로- 그리고, 물론, 리뷰를 아직 안봐서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논란의 나체 크리쳐가 망할 연극 시작하면서 바로 등장하는 형태가 되겠군요(ㄲ)

 


 

<더 타임즈> 대니 보일. 두 명의 배우, 그리고 감독이라는 역할에 대해.

Casting Victor and the Creature was always going to be a gamble. But Benedict and Jonny just feel right, in the same way that Hugh Grant just wouldn’t feel right. They have to have the ambition and talent to command the stage, particularly as it’s the Olivier Theatre. It’s a challenging stage, a huge, huge space and it can swallow up actors very easily.

빅터와 크리쳐역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죠. 하지만 베네딕트와 조니는, 휴 그랜트가 이런 역에 안어울리는 게 당연하듯이, 그 둘은 이 배역에 그냥 어울렸어요. 둘은 무대를 압도할만한 열정과 재능을 지니고 있어야 해요. 그것도 무려 내셔널 씨어터의 대극장, 올리비에 극장에서 말입니다. 만만치 않은 무대에요. 배우 자신을 되려 삼켜버릴 수도 있을만큼의 거대한, 정말 거대한 무대니까요.

 

Benedict and Jonny are like a Venn diagram. They cross over constantly. I know already that they can command that stage. I never worried about them being able to do it, it’s about whether I can fuel them enough. There’s some conceptual work, but the job of director is mostly fuelling actors. They are insatiable. They’ll take anything off you and have a go with it. Then you can see them working it out together. They have to own the play to really make it work.

베네딕트와 조니는 겹쳐진 벤다이어그램처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어요. 둘 모두 이 무대를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난 한번도 둘에 대해서 걱정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내가 그들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죠. 물론 극을 구상하는 작업도 하긴 하지만, 감독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배우들을 끊임없이 자극시켜 그들의 능력을 끌어내는 거에요. 그 능력은 끝이 없어요. 어떤 것이 주어지든 새롭게 도전하죠. 그리고 결국엔 가장 적절한 것, 가장 완벽한 것을 찾아내게 되죠. 그걸 완성하기 위해선 배우들이 극을 주도해야 해요.


It’s quite the opposite of film, in which actors fuel the director; in theatre you’re fuelling the actors for this marathon performance. I remember from my days at the Royal Court that, as the opening night approaches, the actors start to push you away. You have to let it go; in the end the play belongs to the actors and the writer.

영화와는 반대죠.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감독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지만, 연극에선 이런 장기간의 공연이 지속되는 동안 감독이 배우들을 자극해 이끌어야 해요. 예전 로얄 코트(Royal Court) 시절 때도 그랬어요. 첫 공연일이 다가오면 배우들은 감독을 그냥 밀어내기 시작하죠.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게 두면 됩니다. 결국 연극 공연이라는 것은 배우와 작가가 온전히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같은 타임지 1월 기사 중. 아니, 휴그랜트오라버님은 대체 무슨 죄(ㄲ) 진짜 기사 처음 읽었을 때 좀 뿜었긔(ㄲ) 좀 길어서 중간중간 문장을 좀 삭제했습니다만, 뭐, 어쨌거나. 정말 역시 우리 감독님-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던 대목. 감독님이 진심 프랑켄 끝나면 베네딕트씨랑 영화 한편 같이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젭알이모티콘

 


 

<인디펜던트> 닉 디어의 각색에 대해.

As Dear insists, the benefit of a stage version is that it can emphasise "the human scale" of the story. Dear's account begins by pulling us into the subjective experience of the pristine, bewildered Creature as he struggles to acclimatise himself to his brave new world. It ends, as does the novel, in the Arctic, but not with the death of Frankenstein and not with the prospective suicide of his creation. Instead, the two of them are disturbingly stalemated in what feels like the kind of deathly symbiosis you find in Dante's Inferno.

디어의 말에 따르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을 함에 있어 연극 무대가 주는 잇점은 바로 이야기의 "인간적인 면(human scale)"에 중점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디어의 각색에서 이야기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상태의 크리쳐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원작과 마찬가지로 북극에서 막을 내리지만, 각색된 극에는 프랑켄슈타인의 죽음도 없고 크리쳐의 자살을 암시하는 부분도 없다. 대신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고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의 역할이 모호해지는 상태로 남게 된다.

 

인디펜던트 2월 4일 기사. 전문은 이쪽. 이 기사의 상당 부분은 프랑켄슈타인 관련 다른 작품들과 배경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부분은 여기다 옮기진 않지만, 원작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이고 관련 자료를 접한 적이 없는 분이라면 인디펜던트 기사를 읽는 것도 꽤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작품들과 이번 프랑켄슈타인과의 관련점이나 차이점 등이 중간중간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 인용한 마지막 문장은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스크립트북이나 극의 결말이 자세이 묘사된 리뷰 등을 나중에 읽는다면 좀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이 정도로만.

 


 

<파이낸셜 타임즈> 닉 디어. 이야기 속의 두 존재, 그리고 버려짐에 대해.

It’s about these two beings, the creator and his creation, the scientist and his experiment. What is unusual about it is the notion that suddenly the experiment talks back and challenges the scientist to justify what he has done. And right at the heart of the story is a huge confrontation between the two. It’s man and God, obviously: "Why did you make me, why did you make me like this and then why did you abandon me?"

이건 두 존재에 대한 이야기에요. 창조자와 그의 창조물, 과학자와 그의 실험체에 대한 이야기에요. 어느날 갑자기 창조물이 그의 창조자에게 말을 걸어오면서 과학자가 한 일에 대해 심판하려 든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특별한 부분이죠. 그리고 그 중심에 이 두 존재가 벌이는 거대한 대립에 대한 문제가 있어요. 인간과 신(God)의 문제가 될 수도 있죠. "왜 나를 만든 건가요? 왜 나를 이런 존재로 만들어낸 건가요? 왜 나를 버린건가요?"

 

His motives as a scientist are very pure: he sets out to eliminate disease, to advance human experience. It goes horribly wrong, primarily because he’s terrified by what he’s done and he abandons the thing he has created ... and the creature clearly sets out with good moral intent. He’s a noble savage and becomes vengeful, violent and destructive because society rejects him. A sense of abandonment permeates the novel and the play. Danny and I have focused on the feelings of loneliness in the story.

과학자로서 빅터의 동기는 아무런 악의가 없어요. 질병을 없애고 인간을 진보시키려는 목적이었죠. 하지만 사건은 끔찍하게 변해갑니다. 무엇보다 빅터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겁을 먹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이죠. 크리쳐는 처음에는 선한 존재였어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상태 그대로였지만, 주변 환경이 그를 거부하면서 점점 복수심에 사로잡히고 폭력적이고 파괴적으로 변해가게 되죠. 원작과 극 전반에 이런 버려지고 고립되는 상황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대니와 나는 전체 이야기에서 이러한 고독감에 대해 초점을 맞췄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 2월 4일 기사. 닉 디어님과 인터뷰. 전문은 이쪽. 이 기사 이전까지는 빅터와 크리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조금 간과하고 있었지만, 역시 여기서도 내보여주시는 "abandonment"와 "loneliness". 대니보일 감독님이 가장 집착하고 계시는 소재. 저 "28일후"에서도, "비치"에서도, "선샤인"에서도, 가장 최근의 "127 Hours"에서도, 가장 중심에 거대하게 자리잡아 마치 중력처럼 전체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린 감성이죠.

 

그 감성의 연장선상에서 개인적으로 "비치"를 베네딕트씨 주연인 버전으로 보고 싶다는 기분이 얼마전에 들었달까. 물론 다시 찍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만(ㅎ) 혹여라도 베네딕트씨와 같이 영화 작업을 하게 된다면 역시 이런 감성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건 왠지 당연하게 생각됨(ㅎ) ("비치"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트를 할 생각이 있긴 한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군요(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