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星 S-4266



2007-06-10
http://gamm.kr/75 선샤인

사실 난 영화 처음 볼 때는 이카루스 시스템 정말 이해할 수 없었구요. 몇번 다른 포스트에서도 잠깐 쓰긴 했었지만, 이 컴퓨터 시스템의 인공지능은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었고(ㅋ) 뭔가 막 각본스러웠던 장면도 무지 많았잖아요. 뭐, 영화 볼 때 별 생각없이 본다면 집힐만한 장면을 좀 꼽아볼까요?

1. 트레이씨가 이카루스 I과 만나기 위해 비행 궤도를 조정했던 장면. 언듯 생각에, 이카루스 시스템이 방열판의 각도를 맞춰줄 수 있을 것도 같지 않나요? 그런데 어쩐지 이 장면에서 이카루스양은 대단히 조용합니다. 조용해 보입니다. 캡틴 장면과는 좀 딴판이죠.

2. 캡틴과 캐파씨가 패널 수리하러 나간 탓에 선체 각도를 조정하던 장면. 통신 타워 3 & 4가 소실되는 이유는 순전히 그 타워가 회전하기 때문인데, 회전을 멈출 생각은 안하지요. 이카루스도, 다른 크루도. 사실 그게 회전하지 않아서 불에 타지 않았다면, 산소 정원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구요. 그럼 별 일 없이 수리를 끝냈을 겁니다. (뭐, 다른 돌발 상황이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3. 어쨌든 산소 정원에 화재 발생, 핵탄두까지 위험하다고 판단된 상황이 닥쳐서 아직 바깥에서는 캡틴과 캐파씨가 패널을 수리 중이지만, 이카루스양은 선체 각도를 복원하려고 합니다. 캡틴이 억지로 보내서 캐파씨는 살았지만, 그 때문에 캡틴은 죽어버렸지요. 하지만 산소 정원 화재는 내용만으로는 완전히 차단된 것처럼 보였고- 그렇다면 굳이 선체 각도를 복원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분명 산소 정원의 화재는 메이스씨의 아이디어로 진압됩니다. 트레이씨가 비행 궤도를 조정할 당시에는 아무런 태클 없던 이카루스양이 이때는 어쩌자고 고집을 박박 부린거죠?

4. 도대체 핀베커씨가 수동으로 에어락을 분리할 동안에 노무ㅎ- 아니, 이카루스양은 뭘 하고 있었나? 핀베커씨가 이카루스 II로 갈아탈 동안엔 대체 뭘 하고 있었나? 분명 이카루스 I에서 캐파씨와 메이스씨가 돌아왔을 때에는 바로 감지해서 에어락 외부 도어를 닫아야 한다고 깽깽거리지 않았냔 말입니다.

5. 캐파씨와 이카루스양의, 4명이네 5명이네 논쟁(...) 장면. 스무 고개 하자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렇게 콕 집어서 보고하지 못하느냔 말이다. 이 무능력한 컴퓨터 같으니!!

6. 핀베커씨가 메인 프레임을 들어내던 장면. ...분명 영화 초반에 메이스씨가 점검 중일 때에는 냉각수 밖에 나와있어도 최소한 14분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핀베커씨가 빼낼 때는 냉각수를 빠져나오면서 목소리 막 뒤틀리고, 결국엔 셧다운됩니다.

7. 메인프레임이 셧다운되고 분명히 코리언니의 통신기는 먹통이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메이스씨는 자신의 통신기로 캐파씨와 대화하고 있습니다. 캐파씨는 물론 우주복 안에 있는 통신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메이스씨는 분명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통신기를 끝까지 사용합니다. 뭐지, 이런 아스트랄한 시츄에이션은? (ㅋ)

그냥 당장 생각나는 것만 늘어놔도 이 정도로군요. -랄까, 몇 가지는 좀 오류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사실 지금에 와서는 개인적으로는 이카루스 시스템을 변호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ㅋ) 그 변호를 좀 할까 해요, 후후.

일단 트레이씨 장면. 사실 이 장면은 원래 영어 대사로는 별로 이상할 게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어 자막에서는 너무 내용을 잘라먹어서, 마치 이카루스는 당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처럼 나왔었어요. 극장에서 볼 때, 분명 히어링 되는 사람 많지 않을 거라구. 그러니까 제발, 자막 번역하시는 분들,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큼의 압축은 하지 말아주세요(...)

트레이씨가 설명하던 대사에서, "직접 계산했다" 혹은 "수동으로 계산했다" 이렇게만 나왔던 것 같은데, 원래 대사에는 "이카루스를 수동모드로 전환하고"라는 내용이 먼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니, 뭐, 이건 자막에 굳이 넣어주지 않아도 알아챘어야 하는 부분인가? 아무튼 이 수동모드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중요하구요. 나중에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는 캡틴의 말에 메이스씨가 알 수 없다고 대답하는데, 그 대사도 원래 영어 대사에서는 "알람이 울릴 때 이카루스가 방열판의 각도를 재조정했지만"이라고 분명 말해줍니다! 분명 내 기억엔 국내 개봉한 자막엔 저거 안넣어줬었어. 그냥 센서가 타버렸다는 내용으로 넘어가버렸다고! 그렇지 않나요! 난 그래서 분개(...)했었다니까, 대체 이카루스 이 빌어먹을 인공지능 시스템은 지맘에 안들면 우주선이 망가지든 말든 나 몰라라 하는 거냐!!!!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전 사항은, 이카루스는 '기계'라는 것입니다. 50년 후의 인공지능 시스템이긴 하지만, 인간과 아주 자연스럽게 자연어 소통이 가능하긴 하지만, 의사 결정이나 논리 흐름이 인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죠. 단지 상당량의 변수를 엄청난 속도로 계산해서 대처할 수 있는 정도의 슈퍼 프로세싱 능력을 지닌, 프로그래밍된 명령어권이 우선권을 가지는 '기계'라는 겁니다. 터미네이터나 아이로봇의 돌연변이나 에이아이의 엄마찾아삼만리군과는, 아직은, 다른 거에요(ㅋ)

스크린플레이북에서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갈랜드씨의 초판에서는 이 장면에서 메이스씨가 비상 방송을 합니다. 조종실에 트레이 혼자 있던 것이 아니라 메이스씨와 함께 있었던 걸로 나오지요. 사실 영화에서도 메이스씨는 트레이씨와 함께 있었습니다:D 보기에 트레이씨 혼자 있었던 걸로 볼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 장면 아닌가요? 음,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난 맨 처음 봤을 땐 트레이씨 혼자 있었는 줄 알았어요. 그 뒤엔 메이스씨가 달려온 게 아니라 원래부터 같이 있던 거라고 보긴 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트레이씨의 설명에 메이스씨의 설명을 합하면, 이카루스 덕분에 방열판의 패널이 단지 4개만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수동 모드에서도 순간적으로 선체 피해를 계산해낸 이카루스가 비상 제어권을 가져가서 적시에 대처한 거지요. 각도가 틀어진 것을 깨닫고, 알람이 울린 후에 방열판의 각도를 재조정한 것은 인간이 아닌 이카루스, 그녀였습니다. 조종실에서 메이스씨와 트레이씨가 들었을 이카루스양의 메시지를, 관객 입장에서는 카메라가 캐파씨의 벙커에 있었기 때문에 듣지 못했을 뿐이라는 거죠.

이런 기분을 계속 안고 패널 수리 장면을 보면 그때의 이카루스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카루스는 수동 모드에 있었고, 회전을 개시하기 전에 이미 회전 프로세스를 계산해서 통신 타워의 소실을 경고했습니다. 이쯤까지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였겠지요. 그리고 그녀는 수동 모드로 들어갑니다. 제어권은 캐시양이 일단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불에 탄 통신 타워에 빛이 반사되면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산소 정원의 창으로 그 빛이 투과됩니다. 현재의 선체 각도, 통신 타워와 산소 정원의 위치, 통신 타워의 회전 속도 등등이 모두 고려되어서 계산을 했어야 알 수 있는 시나리오지요. 이 정도쯤은 일반적인 예측 시스템에는 들어갈 수 없을 법한 정도의 복잡도입니다. 아무튼 결국 이 상황은 이카루스도 예상하지 못했고, 산소 정원에는 위험했지만 아직은 괜찮은 정도의 피해만 발생했습니다. 분명 첫번째 어택에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두번째 어택이 없었다면,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 수 있었을 정도였을 겁니다.

이 첫번째 어택을 감지해낸 이카루스는 수동 모드에서 다시 상황 변수를 재조정해서 예측 가능한 결과를 계산해봅니다. 그리고 결과는? 산소 정원 화재 발생 가능성 80%- 뭐 이런 정도겠죠. 크리티컬한 피해입니다. 결국 이카루스는 비상 상황으로 결정하고 제어권을 강제로 회수한 다음 선체의 각도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캐시양과 명령권의 교전이 발생하지요.

생각해보면, 이카루스 시스템은 핀베커라던지, 화재라던지, 뭐 그런 다른 영향이 전혀 없다고 고려했을 때, 이카루스 혼자서라도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태양 궤도까지 비행해서 핵탄두를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입니다. 그런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크루가 탑승하게 된 것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기계'이기 때문이지요. 일단 가장 불확실한 핵탄두 분리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 있는, 현시대에 최고의 행성 폭탄 전문가인 물리학자를 탑승시켜야 하겠고, 가능성은 적지만 비행상의 오류나 비상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파일럿과 네비게이터, 엔지니어가 타야합니다. 인간이 탑승하게 되기 때문에 통신 담당관도 필요하게 되고, 비상시를 위한 의사도 필요하게 됩니다. 이카루스 I의 인원 구성도 비슷했을 거구요. 그리고 이 모두를 책임지고 지휘할 캡틴- 이렇게 8명의 크루가 구성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이카루스의 메인프레임 프로그램에 가장 최우선 순위로 프로그래밍된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선체 및 핵탄두 보호'와 '핵탄두 분리 지점까지의 비행과 분리 프로세스 실행'일 겁니다. 하지만 일단은 비상시를 위해 탑승자인 인간이 제어의 우선권을 가지게 되고 유효한 명령으로 실행된 수동 제어 모드 하에서의 이카루스는 그저 명령하는대로 따르는 지금 현재의 컴퓨터 시스템이나 별 다를 바 없는 시스템 정도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카루스가 지금 현재의 일반적인 컴퓨터 시스템과 다른 점은 자신의 최우선 목적을 보호하고 성취하기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한 최우선 목적에 반하는 상황이 되면 아무리 수동 제어 모드라고 하더라도 이카루스가 강제로 제어권을 탈취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거지요. 인간 탑승자가 어떤 이유로 모두 죽어버린다던지 하더라도, 이카루스 메인프레임 시스템이 살아남아 있다면, 그녀는 계속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분리 시나리오의 신뢰도는 일단 둘째 문제이구요(ㅋ)) 이 정도는 이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별로 무리도 가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강제 탈취마저도 취소할 수 있는 슈퍼 파워의 매뉴얼 명령은 어느 시대, 어느 시스템이건 준비해놓기 마련입니다. 영화에서도 실제로도 쓰였지요.)

이카루스는 이러한 제어권의 이동에 따라, 트레이씨가 실수로 방열판의 각도를 조정하지 않고 선체의 비행 궤도를 조정했을 때, 인간의 명령 없이 적절한 각도를 재계산하여 방열판의 각도를 조정했습니다. 등장하진 않았지만, 방열판 각도를 재조정 한 후에는 비행 궤도까지도 원래대로 조정했을지도 모르지요.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카루스는 산소 정원의 화재를 거의 확정지은 그 순간에 화재를 막기 위해 강제로 제어권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겁니다. 트레이씨의 경우에는 이카루스의 행동을 방해할 요인이 없었던 반면, 이 경우에는 캐시양이 계속 제어권 탈취를 방해하기 때문에 손쉽게 이룰 수는 없지요.

어째서 먼저 보고를 하지 않느냐- 라는 것도 이해하려면 할 수는 있습니다. 일단 그녀는 '기계'이니까요.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자신이 계산한 화재 가능성 리포트를 먼저 알려주는 쪽이 좀더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이카루스가 현재 시스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자동화된 인공지능 시스템임을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해요. 어쨌든 이카루스는 캐시양이 명확하게 이유를 말하라고 명령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화재 가능성을 알립니다. 이미 시기를 놓쳐서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실제로 화재가 발생해버렸지만.

화재 발생 후, 이카루스는 이후의 예상 시나리오를 계속 체크합니다. 메이스씨 같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현 상황에서의 화재 진압은 실패율이 60%로 계산되었지요. 그로 인한 생명 유지 장치 손상도는 75%입니다. 개봉판 자막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 대사에는 설치된 스프링쿨러 시스템은 동작했지만 소용 없어진 걸로 나옵니다. 우주선 내부는 화재에 대비한 구역 폐쇄나 구역 분리 같은 시스템은 없지만, 각 외벽들의 강도가 생각보다는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 복도에는 폐쇄문이 있긴 합니다.) 산소 정원의 내유리도 1차 화재 정도로는 깨지지도 않고 버티고 있었지요. 메이스씨가 산소 공급을 지시한 이후의 2차 폭발로 겨우 내유리가 깨진 정도입니다. 메이스씨의 아이디어로 금방 진압을 하지 않았더라도 화재가 번질 확률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이카루스가 선체 각도 복원을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에 있습니다.

이건 사실 영화 화면에 나오긴 했지만, 실제로 대사로 말해지거나 한 건 없지요. 대사로 말해진 건 메이스씨의 종용에 따라 캡틴이 말했던 "핵탄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산소 정원 화재는 차단된 것 같은데, 꼭 다시 회전해야 하는 거야? -라는 의문이 생기기에 충분. 맨 처음 볼 때도 그랬고, 그 뒤로 세번을 더 볼 때도 캡틴이 죽는 장면은 마냥 극적인 것 외에는 별로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아- 라고 생각했었지만요. 그런데 실제로는 꽤 문제가 있었습니다. 산소 정원 화재로 산소 정원에서 이어지는 Control Conduit(배관 시스템? 전기 회로?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음(...))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대략 200도가 넘어섰지요. 메이스씨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스크린에 계속 온도가 표시되고 있었습니다.

인라인이미지
Propulsion Unit Control : Failure Imminent (추진기 손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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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ol Conduit Temperature : 217.5c (...계속 상승 중)

인라인이미지
Oxigen Garden Failure 62.75% (산소 정원 62.75% 손실)

선체 맨 끝에 있는 추진기 손상 가능성도 있었지만 추진기 쪽까지는 가까스로 그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무시한다고 해도, 이 산소 정원으로부터 퍼져나가는, 혹은 산소 정원을 경유해서 선체 전체에 길게 뻗어있는 Control Conduit의 끝은 핵탄두실에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산소 정원 근처의 온도가 200도가 넘어갔으니, 산소 정원에 발생한 화재 자체에서 불이 번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배관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선체 전체에서 화재가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이 된 겁니다. 게다가 선체 각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결국 또 통신 타워로부터 빛이 어딘가로 반사되어 다른 곳에도 화재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구요. 어찌됐든 최대한 빨리 선체 각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 그늘에 있어 안전하긴 하지만, 산소 정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로켓 추진기에 그 피해가 옮겨진다면 정말 최악이 될 겁니다. 2차 폭발의 가능성도 있는데다, 로켓 추진기가 손실될 경우, 핵탄두의 부스터를 켜지 않는 이상 수리를 위해 멈춰선 선체를 움직일 방법을 없을걸요.

어쨌든, 이카루스양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 것은 아니란 겁니다. 오히려 선체 보호를 위해서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신속하게 진행해나갔다고 볼 수 있죠. 뭐, 그렇다고 해서 캡틴의 죽음이 무마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이카루스양의 책임은 아니란 정도?

음. 그냥 넘어갔지만, 통신 타워의 문제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통신 타워의 회전만 없었어도, 이 모든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크루나 이카루스 자신도 회전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은 통신 타워의 회전이 이카루스의 제어권 아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됩니다. 사실 메인프레임인 이카루스의 제어권 아래에 있지 않는 서브 시스템은 몇 있습니다. 태양열 합성 시스템도 메인 시스템과는 전혀 별개로 움직이고 있어요. 물론 그 태양열로부터 생성된 전기를 선체에 공급하는 것은 메인 시스템의 제어하에 있지만. 그리고 산소 정원 자체의 시스템도 완전 별개입니다. 산소 정원에 공급되는 전원 시스템, 급수 시스템, 온도 조절 시스템, 그리고 산소 정원에서 생성해낸 산소를 선체에 공급하는 시스템까지는 모두 메인 시스템과는 별개입니다. 그래야 이카루스 I의 상황이 설명이 됩니다(ㅋ) 그리고 또 하나 중력 시스템 역시 메인 시스템의 제어에 있지 않습니다.

이 몇 가지 서브 시스템은 모두 메인 시스템이 다운되어도 스스로 동작할 수 있는 완전 독립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통신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다만, 각 크루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형 통신기로 '이카루스를 통해' 전달하던 통신 방법은 메인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요. 결국 코리언니가 메이스나 캐시, 캐파와 통신할 수 없었던 것은 코리언니의 통신기가 평상시 모드, 즉 이카루스를 통한 교신 모드에 있었기 때문이었을테고, 메이스씨가 자신의 통신기를 통해 우주복의 통신기를 가지고 있던 캐파씨와 여전히 통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통신 모드를 그렇게 변경 설정한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맨 처음 조종실에서는 메이스씨가 자신의 통신기가 아닌 콘솔 앞의 마이크로 캐파씨에게 말을 합니다. 통신 타워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생각엔, 타워의 하드웨어 자체가 기계식으로 구성된 건 아닌가 싶네요. 메인시스템이 다운되어도 통신 타워의 하드웨어가 살아있다면 메인시스템의 결함을 인지해서 조난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은 그대로 이카루스 I에 적용되기도 하구요. (이카루스 II가 발견한 이카루스 I의 신호는 정확히는 시스템에서 내보내는 조난 신호였습니다.)

뭐, 이쯤에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접구요(ㅋ) (이미 상당히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만.)

이카루스와 캐파씨의 대화 장면은 사실 쉽습니다. 쉬울지도 모르지요. 갈랜드씨의 시나리오 초판에는 이카루스가 먼저 캐파씨에게 경고를 합니다. 영화 최종판에서는 캐파씨가 산소 소비량을 체크해달라고 먼저 주문하던 것과는 달라요. 이 부분은 영화 최종판에서 변경한 방식이 더 앞부분의 이카루스의 행동과는 맞는 것 같아요.

이카루스는 '기계'입니다. 앞으로 50년 후의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인간의 사고방식에 다다르기에는 좀 모자랍니다. 어쨌든 기본 베이스는 '수동적으로' 명령과 프로그래밍에 따르는 구조입니다. 그 상황에서 이카루스가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의 최대 목적인 '선체와 핵탄두의 보호'가 위협받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입니다. 그외의 경우에는 크루에게 분석 자료를 제공하고 권장안을 내어줄 수는 있지만, 이카루스가 단독으로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설명으로 앞부분의 상황을 이카루스양의 무고(ㅋ)로 판결나게끔 이끌어왔는데, 난데없이 이카루스양, 핀베커의 기습도 보고하지 않은 주제에 산소 모자라다고 보고하는 건 좀 아니잖아- 그것도 어째서 캐파씨에게? 캐파, 메이스, 캐시, 코리가 남은 상황에서 캡틴 대리로 올라갈 만한 지위의 인물은 적어도 캐파씨는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ㅋ) 뭐, 아무튼,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최종판에서는 이카루스양의 수동적인 면모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시키기 위해 캐파씨의 요청이 추가되었습니다. 그 뒤의 대사 프레이즈는 똑같아요. 4명이네 5명이네 싸우다가 결국 캐파씨가 질문을 바꾸지요. '기계'에게 적합한 질문으로 말입니다. 논쟁해봐야 소용없는 거에요. '기계'에게 질문할 때에는 정의역과 치역이 명확해야 하는 걸요(ㅋ)

여기까지 하면 맨 처음에 나열했던 항목 중 두가지만 빼고 다 이카루스양의 변호로 쓸만해집니다(ㅋ) 남은 항목은 사실 핀베커씨가 연루되기 때문에 좀 명확한 변호가 힘듭니다. 핀베커씨 존재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미확인괴-_-물체이기 때문에(...) 일단 에어락에의 기습은, 이카루스 II가 에어락으로의 미확인물체(...)의 진입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감지했다 하더라도 위험 요소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사실 수동 분리에 대한 대처는 이카루스가 전혀 할 수 없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위험 요소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쪽에 한표. 사실 이카루스 시스템 자체가 뭔가에 대한 공격에 대비한 시스템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스템 제작자 입장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적은 상황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입니다. 대체 어느 누가 핀베커 같은 돌발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겠어요? 외계인이라도 침략할까봐 대비해놓겠어요? 이카루스 선체 자체도 방열판을 빼놓고는 방어 시스템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공격 시스템도 전-혀 없어요. 단지 이 시스템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목적은 안전한 '운반'입니다. 선체의 하드웨어는 그런 점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부가적인 설비와 소프트웨어는 이 운반에 동행할 크루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누군가 외부로부터 침입한다- 라는 가정은 일단 전혀 없는 거에요. 고려할 필요가 없지요.

핀베커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이카루스 시스템 상황으로 봐서는 감지해도 위험 요소로 판단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일단 이카루스는 그 상황에서 또 문제의 '수동 제어 모드'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캐시양이 핵탄두로부터 선체를 분리해서 이카루스 I에 도킹을 시도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ㅋ) (아, 그리고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핵탄두 분리된 선체에는 충분히 그 자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만한 소규모의 부스터 엔진이 어딘가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즉, 예정된 시나리오 상에서 지구로의 귀환 시도는 가능해지는 겁니다(ㅋ) 단지 영화 장면에서 제대로 찾아볼 수 없을 뿐(...)) 이카루스가 핀베커를 감지했다고 해도 그의 생각까지는 읽을 수 없을테니, 테러를 할지 안할지는 모를 일이죠. 결국 외부인에 대한 논리가 없는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과는 달리 위험 예측을 능동적으로 다각도에서 수행하고 정리하고 취합하지는 못하는 이카루스. 수동으로 에어락을 분리한 것이 핀베커임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이카루스 시스템은 그를 위험 요소로 단정하지는 못할 겁니다. 어쨌든 이카루스 II의 손상은 그때까지는 없었으니까요. 파손된 것은 이카루스 I의 에어락 뿐이죠. 메이스나 코리언니가 이카루스의 로그 파일을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메이스가 혹시라도 이카루스에게 에어락 도킹을 해제한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았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별로 그렇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을 것 같습니다. 뭐라해도 메이스씨는 일단 엔지니어이구요, 이카루스의 대답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직접 시스템 파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테니까요. (결국 그렇게 해서 남은 결론은 트레이씨였고, 그쯤되어선 에어락 테러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버렸지만.)

핀베커의 존재 자체를 감지할 수 없다고 해도 되겠지만, 어쨌든 핀베커씨, 어떻게 된 영문이든 호흡은 하고 있으니까, 이카루스로서는 어떻게든 탐지할 수 있을 거구요. 사실 탐지한다고 해도 이카루스로서는 정의할 수 없는 예외의 영역으로 빠져버렸을 것 같지만요. 호흡은 하고 이동도 하는데, 표면 온도는 막 몇백도인데다가- 이카루스의 크루 프로파일에도 절대 매칭되는 사람 없을테고. 목걸이형 통신기(이건 아마도 생체 탐지기의 기능도 있을 듯 합니다)도 없으니 이카루스로서는 아무런 판단할 근거가 없지요. 단지, 캐파씨의 요청, 산소 소비량 체크에 걸린다는 것 뿐? 그렇게 따지면 별로 핀베커의 존재를 미리 알리지 않은 것도 납득이 안가는 건 아니구요. 그렇잖아요, 캐파씨와의 논쟁 때에도, 캐파씨가 질문을 바꾸기 전까지는 절대 핀베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진 않습니다. 산소 소비량을 체크해달라는 질문에 4명 쓸 산소로는 모자라다는 대답만 하지요. 트레이를 계산에 넣고 있는건가- 라고 생각한 캐파씨가, 문득, 그야말로 문득, 선득해진 표정으로 "5번째 크루는 누구지?"라고, 질문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구요. (질문을 바꾸어도 모르는 건 모르는거지만.)

뭐, 이 정도면 대충 변호가 다 된건가? (ㅋ) 메인프레임을 냉각수에서 빼내던 문제는, 사실 메이스씨 점검할 때에는 4대 중 1대만 빼놓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때부터 14분-이라고 생각하면 메인프레임이 냉각수로부터 빠져나오던 속도를 보면 좀 눈감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전혀 알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을 위협하는데 메이스에게조차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건 좀 납득이 가질 않지요. 역시 이런 시츄에이션에 대한 논리도 정의되지 않아서-인 건가? 메인프레임 강제 사출-은 좀 있을 법한 시나리오는 아니네요. 확실히 메인프레임 하드웨어에 대한 외부 공격-이라는 건- 그치만 크루의 정신 이상을 고려해서 정신과의까지 태울 정도면 정신 이상으로 인한 테러 정도는 좀 예상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손쉬운 문제가 아닌건가? (ㅋ)) 메이스씨의 초반 점검 씬은 아마도 메이스씨의 최후와 냉각수의 역할을 암시하는 복선 정도로 끼워넣은 것 같지만(갈랜드씨의 초판에는 메이스씨의 점검 씬은 없습니다. 영화 최종판에 새로 추가된 장면이에요.), 그치만 그 장면 때문에 핀베커의 테러씬은 어쩐지 설득력이 약화된 것 같다구.

...그저, 이카루스양을 좀 오해한 것 같아서, 좀 변호해주고 싶었습니다(ㅋ)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그래도 쓰면서 좀 정리한 것 같은 기분. 이카루스양을 설계한 팀에게 좀, 이카루스 3호를 만들거든 이상 징후는, 그게 아무리 사소해도, 좀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라도 보고를 하도록 설계하도록 말해주고 싶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