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星 S-4266



2014-05-15
http://gamm.kr/1473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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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에 계절마다 달리는 광화문글판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방송전인 2012년 봄에 걸렸다고 합니다. 당연히(ㅎ) 직접 본 건 아니고 작년에 저 이미지 때문에 알게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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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본사에 내걸렸던 글판. 캘리그라피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참 잘 나온 듯. 학교 소설판에 보면 남순이가 이 시를 지하철 역에서 보게 되는데, 그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짧게 적힌 싯구들 말입니다. 실제로 지하철역에 "풀꽃"이 실려있었던 적도 있던 것 같더군요. 그 싯구들 교체되는지는 몰랐는데 주기적인지 아닌지 암튼 교체되기도 하는 듯. 아무튼 지하철 스크린도어도 나쁘진 않았지만 남순이가 저 글판으로 보게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학교를 다시 가겠다고 어두컴컴하고 텅빈, 혼자 죽은듯이 웅크리고 있던 방구석을 털고 일어나와 검정고시를 보러 가게 된 그 날에, 아직 공기는 조금 차갑지만 눈이 부실듯이 내리쬐는 햇빛과 그 햇빛을 받아 환하게 봄이 온 것을 알리는 저 글판을 문득 올려다보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는 남순이가 떠올라서요. "너도 그렇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친구는 더이상 곁에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지금 이렇게 다시 살아가려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괜찮다고 어깨를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그런 순간이 되지 않을까.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동료들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연인들과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흘려보내면서 "너도 그렇다" 전-혀 스스로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문득 생각하니 오늘이 스승의 날이네요. 스승의 날 챙겨본지도 까마득한데(ㅎ) 문득 정쌤이 생각이 났습니다. 나 때도 별로 정쌤같은 선생님은 많이 없었는데 요즘에야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정쌤이 2반 담임이 안되었다면 남순이는 여전히 창가에서 아무 표정도 없이 텅빈 하늘만 바라보면서 지냈을테고 그러다 흥수가 전학을 오면 그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잘못과 후회에 짓눌려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둘 사이도 스스로도 깨어져버렸겠지. 종례 시간을 훨씬 넘겨 겨우 학교로 돌아온 흥수를 보곤 부장선생님한테도 밀리지 않고 "종례 아직 안끝났는데요"하고 말하던 정쌤 생각남. 사실 그전까지는 정쌤 별로 눈에 안두고 있었는데(ㅎ)


게다가 딱 그 뒤 씬에서는 그렇게 한녀석을 붙잡았더니 다른놈이 도망쳐버려서- 남순이 자퇴서를 앞에 두고 아무 말도 못하던 정쌤 표정도 좋았었지요. 계약직 기간제 교사이고 임시 담임, 슈퍼스타 강사에 밀려 수업 평판도 떨어지고 체구도 작고 항상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여선생님. 교사이기 이전에 그냥 어른으로서도 한반의 아이들 전부의 손을 잡고 이끌어가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라 보이는 선생님. 그런데도 아직은 아이들의 손을 놓을 때가 아니라며 단지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가르쳐주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아이들 한명한명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어하는 선생님. 설령 그 손을 놓칠지언정 먼저 손을 놓치는 않는 힘이 닿는데까지 아니 그 이상이라도 어떻게든 손을 뻗어 잡아주려는 선생님.


글쎄요.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정쌤 같은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대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고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공부파 여자아이들 같진 않았지만 UCC 수업이나 하고 그러면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했을지도 모름(ㅎ) 하지만 오정호나 민기, 영우, 그리고 남순이와 흥수까지 조금만 손 뻗어주고 그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어른들이 한사람이라도 옆에 있으면 그 손을 맞잡고 따라와줄 아이들도 분명 있을 거니까요. 이런건 그냥 성적이나 관리하고 수능 문제나 가르치고 일탈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그저 교칙으로만 벌하려는 선생님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학교를 방송 당시에 봤었다면 작년 스승의 날에 이랬겠지만(ㅎ) 어쨌거나 이번이 첫 스승의 날이니깐.


정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