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星 S-4266



2013-09-16
http://gamm.kr/1349 학교

남순이 처음 보고 일주일인가 10여일 지나서 엉겁결에 학교 소설판을 사긴 했는데 막 기대를 잔뜩 하고 샀던 건 아니었는데요. 진심 1권 표지에 남순이랑 흥수 엔딩컷 있는 거 보고 그냥 그거 때문에 혹해서 샀다 진짜로(ㄲ) 하지만 책 받은 날 프롤로그 딱 읽으면서 맘에 들어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쫙 다 읽어버렸더랬습니다.

 

프롤로그는 본편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던 장면으로, 남순이가 드디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중학 검정고시를 본 그날 흥수네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실려 있는데요. 매일 같이 악몽을 꾸고, 매일 같이 가위에 눌리던 남순이 전날 밤 꾸었던 꿈에서는 다른 꿈을 꾸었다고 나옵니다. 매일 같이 꿈속에서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던 흥수 대신에 마치 바로 어제 만난 듯한 예전의 흥수가 나와요.

 

어젯밤에도 녀석은 남순의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순을 보면서 웃어주었다.

'어디 갔다 이제 왔냐, 새꺄.'

녀석은 예전 그 말투, 그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꿈에서 깨어난 뒤 남순은 조금 울었다.

오늘 녀석을 만난다면 어젯밤 꿈에서 본 그 모습일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하는 상상. 이상한 상상. 왜냐하면 오늘은 이상한 날이니까.

어디 갔다 이제 왔냐, 새꺄.

남순은 대답할 것이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아주 슬픈 꿈이었다고. 그리고 또 이야기할 것이다. 오다가 교복 입은 아이들을 봤다고. 그래서 옛날 생각이 났다고 정확하게는 네 생각이 났다고.

그리고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학교로 돌아가볼 참이라고.

남순의 이야기가 끝난 뒤 녀석이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잘했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장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정말 앉은 자리에서 그냥 그대로 쭉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 갔다 이제 왔냐"고 예전처럼 말해주는 흥수도 좋았지만, 그 꿈을 꾼 남순이 흥수의 집을 찾아가면서 흥수 생각을 하면서 흥수에게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잘했다"라는 게,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괜찮다라던가, 용서한다라던가, 그런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학교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잘했다"라고 말해주는 흥수를 상상하고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인라인이미지

 

그러니까 바로 이 장면에서 흥수가 실제로 해준 말이잖아요이모티콘

 

소설판을 읽기 전에도 저 장면의 흥수가 무척 마음에 들었었는데- 별거 아니라는 투로, 어제 뭐했냐 하고 묻는 것처럼 학교 때려치고 뭐했냐고 물을 때부터 가만히 남순이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곤 역시 별거 아니라는 투로, "잘했다 새끼야."하고 말해주던 그 말투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었는데. 프롤로그 읽으면서 딱 저 장면의 남순이가 떠올라버려서 그만- 흥수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해주곤 너 머슴이라며 물 떠오라고 장난을 걸긴 했지만, 흥수가 툭 던지듯 말한 "잘했다 새끼야."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가지고 실체화가 되어서 다가왔을까 싶어서. 자신이 한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없었던 일인 듯이 그렇게 가볍게 용서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학교로 돌아와 다시 같이 있을 수 있게 된 그 사실만은 "잘했다"고 받아들여졌으니까 말이에요.

 

물론 난 남순이를 더 편애하긴 하지만, 흥수(역의 우빈)가 저렇게 지나가듯 한마디씩 하는 게 너무 좋아요. 남순이 중학 때 사놓은 운동화 받아들면서 대뜸 "짝아니껀."하고 툭 던진다거나 이이경이 어이없게도 남순이더러 의외로 곱게 자랐나보다 하고 말했을 때 아주 즉각적으로 코웃음을 치던 때라던가(ㅎ)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남순이를 굉장히 잘 알고 있고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막 느껴지니까 말이에요. 마치 중학 때 남순이가 슈퍼 유리창을 깨부셨을 때처럼이모티콘